섹션3. 디케


디케(Dike-정의의 여신)

관리자 | 2020.11.12


섹션 3 : 디케(Dike-정의의 여신)

 

이 섹션은 저널리즘의 기능과 형식을 영화라는 매체로 확장한 저널리즘다큐 섹션과 ‘진실의 추구’가 언론의 본질적 존재 이유인 언론의 세계 섹션을 아우르면서 동시에 맺는다. 한 사건의 실체를 찾아 알리는 언론은 단순한 정보제공자일 뿐이다. 언론 소비자인 각 시민은 이 진실을 개인적인 경험의 틀 안에서 바라보며 자신의 정파적 지향점에 따라 배제하거나 수용한다. 그러나 때로 어떤 사건은 판결이 필요하기도 하다. 정의란 무엇인가? 객관적 진실은 있는가? 누가 어떤 방법으로 판단을 내리는가? 판결의 순간에 던질 수 있는 질문들은 엄밀히 말하면 답을 내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비록 현실의 법정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가 승리한다. 영화는 답을 찾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저널리즘과는 다른 방식으로 질문을 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송곳과 현미경을 동원해 사실을 집요하게 쫓는 저널리즘과 상상력으로 사실관계의 틈을 메우는 영화는 상호보완적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정의의 여신 디케는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눈은 헝겊으로 가렸다. 한국 대법원에 있는 디케는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고 눈은 뜨고 있다. 상징은 단순 명료하다. 공평을 잃지 말고 엄정하게 정의를 집행할 것. 겉모습에 현혹되지도 말 것. 또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진실을 마주할 것. 상징은 단순하지만, 실천과 적용은 또 다른 문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실에서 디케의 상징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대상과 의미를 확장할 수 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디케를 판관의 문제로 단순화시키면 그 의미는 한없이 줄어들고 퇴색한다.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노력, 불편하고 때로 두렵기도 하지만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자세, 치열하게 거짓과 맞서는 의지의 상징으로 ‘정의의 여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가 객체로 전락하지 않는다.

신화의 디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디케적 인간이 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누군가가 그 역할을 맡아 다양한 분야에서 올바른 길을 가려고 고민하고 싸운다. 진실의 문제를 해석의 문제로 왜곡하는 자들과 당당히 맞서고,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고, 소수자의 권리 확대에 힘써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의 외연을 넓히고, 오랜 시간 축적된 견고한 기득권만의 성채를 허물어 변화를 끌어낸다.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상처를 딛고 일어서기도 한다. 현실의 디케는 모든 곳에 두루 있다.